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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과 계엄

기사승인 2025.01.17  19: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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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중앙신문]

   
▲고일광 변호사

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한 나라의 헌법은 이렇게 주권자인 ‘국민’과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기관’ 사이에 지켜야 할 근본규범에 관하여 자세히 규정하고 있는 최고법이다.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는 다양한 기본권을 열거하고 국가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고, 국회, 대통령, 법원, 헌법재판소 등 여러 국가기관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의 종류와 행사의 요건과 효과 등에 대하여 자세히 정하고 있다.

이 헌법전 내에 가장 무서운 단어가 2개 있다. 바로 ‘탄핵’과 ‘계엄’이다. 탄핵이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통해 책임을 물음으로써 위임해준 권력을 박탈시키는, 일종의 주인의 종에 대한 해고 통지이다. 반면 계엄이란 최고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전시·사변 기타 국가비상사태 발생시 국가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해서 발령하는 것으로, 국가 보존을 위해서 일정 부분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까지도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비상조치이다. 탄핵과 계엄은 주권자인 국민과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기관 사이에 서로 칼을 겨누는 극약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조치 다 국가를 보존하고 헌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궁극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2024년 12월초,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들은 이 두 조치가 서울 한복판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두 조치 모두 순수하게 국가를 보존하고 헌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본래의 목적에 부합했는지도 의문스럽다. 서로 이 나라를 지키고 헌법을 보존하기 위해서 불가피했다고 주장하지만, 상대방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대통령도 인정하지 못하겠고 그 정권 하에 임명되는 국가기관의 장 모두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탄핵을 남발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고, 반대로 그런 국회 다수당을 정치력으로 끌어안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상대방 정치세력의 도넘은 정치적 공격에 불과한 것을 갑자기 ‘좌익불순분자들이 일으킨 전시·사변 기타 국가비상사태’라고 뒤집어씌워 전국민을 상대로 계엄이라는 무시무시한 칼을 함부로 휘둘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둘 다 나만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이기적 정치의 극단적 망상에서 나온 정치놀음이 아닐 수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가장 신성하고 엄중하게 행사되어야 할 두 개의 보검을 고작 당파싸움하는 두 정치집단이 패싸움하는 현장에 상대방을 죽이겠다고 꺼내온 격이랄까.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헌법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이런 우리나라의 후진적 정치의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미디어와 인터넷이 발달한 덕분에 이런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이 전세계에 실시간 생중계되었다. 안그래도 힘들게 버텨가던 한국경제를 수렁 속으로 밀어넣으면서, 환율은 올라가고 국가신인도는 추락하고, 한국을 부러워하던 수많은 이웃나라들로부터도 조롱과 멸시와 수모를 당하고 있다. 언제라도 무모한 핵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북한의 안보적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이 엄중한 상황에서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있었던 몇 번의 대통령 탄핵 때문인지, 이제는 헌법재판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는 듯하다. 헌법에 나오는 수많은 정치적 규범적 역학관계를 최종 판단하는 헌법재판소는 사실 정치기능이 잘 발휘되는 나라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한다. 정치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이나 미국의 경우 연방헌법재판소나 연방대법원이 정치권력끼리의 대립의 와중에 큰 목소리를 내는 결정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좌우 정치집단 막론하고 자기들의 못난 정치력으로 문제를 만들어 놓고서는 상대방을 탓하며 툭하면 탄핵이니 권한쟁의니 헌법소원이니 하며 헌법재판소로 사건을 가져온 후, 애꿎은 헌법재판소에 대해서 상대방 정치세력의 뺨을 때려달라며 협박하듯 떼를 쓰는 행태가 너무 많다. 후진적 정치행태를 넘어 망국적 정치행태가 아닐 수 없다.

모두들 정신차려야 한다. 불과 80년 전 전세계의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경제와 민주주의, 예술과 문학, 반도체와 IT, 첨단기술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인 발전을 이루며, 이제는 감히 다른 나라를 원조해 줄 수 있는 글로벌 영향력까지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뛰어난 정치지도자나 정치세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부모, 조부모들 세대의 눈물겨운 헌신과 희생 덕분이었다. 주인노릇하라고 대통령, 국회의원 뽑아 준 것이 아닌데도 마치 자기가 이 나라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는 저들에게 정치적으로 경종을 울려줄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라의 진정한 주권자인 국민밖에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의 근본정신을 엄중히 되새겨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실제로 지금까지의 숱한 정치적 위기를 스스로 슬기롭게 극복해 왔기 때문이다. 

 

ㅁ고일광 변호사 약력

서울대 법대 졸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퇴임

법무법인 바른의 파트너 변호사

 

 

고일광 변호사 webmaster@ggjap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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