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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의 또 다른 역사

기사승인 2025.04.02  15: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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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중앙신문]

   
▲박세호 경기중앙신문회장 [경영학 박사]

정조대왕이 1794년부터 수원화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1796년에 수원화성 축조를 완성하고 4년 후인 1800년 8월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11세의 순조가 왕위를 계승하였고 순조는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정조의 집권 세력인 시파의 숙청에 주력하였다. 정순왕후는 김한구의 여식으로 15세에 나이에 51세 연상인 영조와 혼인하였는데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보다 10살 어린 나이다. 정순왕후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고 정조대왕이 사망하자 오빠인 김귀주를 내세워 시파 숙청 명분으로 천주교도 탄압을 하였다. 1801년 2월 금교령을 내리고 4월에는 이승훈 정약전 최필공 홍락전 등을 처형하고 6월에는 중국인 신부 주진모가 처형 되었다. 이때 약 140명의 순교자가 나왔는데 이를 신유사옥이라고 하는데 신유사옥의 피비린내 나는 순교의 터가 수원화성이라고 한다.

정순왕후는 정조대왕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13번이나 찾았고 혜경궁 홍씨 환갑 잔치를 벌였던 수원화성 행궁 앞에서 많은 천주교 신부나 신도들을 포도청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처형을 하였다고 한다. 정조 사후 3년 만에 수렴청정은 종식되고 정순왕후는 그 후 2년 뒤 사망한다. 그러나 정순왕후를 시작으로 현종과 철종까지 약 60년에 걸쳐서 조선은 왕의 외가와 처가에 의해서 세도정치를 하면서 권력의 핵심 기구인 육조와 의정부가 무력화되었는데 조선 망국의 시작이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순왕후 사망 약 60년 후인 1864년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대원군은 세도정치를 끝내고 집권할 명분인 쇄국정책의 하나로 다시 한번 천주교 박해를 시작한다. 전국에서 8천 명의 천주교 신도를 체포하고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를 병인박해라고 한다. 수원화성의 포도청에서도 수원 인근에서 잡혀 온 약 2천 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순교를 당하고 유배되는 등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 자리가 수원화성 행궁 맞은편인 지금의 수원종로교회와 북수동 성당 자리라고 한다.

북수동 성당은 수원 최초의 성당이며 천주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데 북수동 성당은 1923년 지금의 자리에 신축하였다.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북수동 성당은 100년이 지나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수원 천주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천주교 역사의 현장이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전주 한옥 마을 건너편에 전동 성당이 있다. 전주의 대표적인 역사 관광지로서 전동 성당 자리도 신유사옥 때 유항검 형제와 윤지현 김유산 등이 순교를 당한 장소로 1891년 프랑스 보두네 신부가 토지 매입하여 1908년 성당을 건립해서 1914년 완공했다. 전주의 전동 성당은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서 호남지역에 지어진 최초의 로마네스크 건물로 유명하다. 전주 한옥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꼭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북수동 성당은 그렇지 못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북수동 성당에서 2-3분 걸어서 내려오면 수원종로교회가 있다. 수원 기독교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수원종로교회는 1907년 신축하였는데 이 자리 역시 신유사옥과 병인박해 때 수많은 신도가 순교 당한 장소라고 한다. 수원 기독교의 역사는 1899년 감리교인 서너 명이 수원 읍내로 이사 와서 정착하였는데 수원종로교회는 남자 매일 학교와 여자 매일 학교 등 수원 교육의 효시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07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여 약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수원종로교회는 지금 뒤쪽에 신축하여 카페 등도 있지만 본관은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매년 3.1절이면 수원시민이 기억하는 이하영 목사 임면수 권사 김세환 권사 이선경 성도 등이 수원종로교회 출신으로 수원 독립운동의 시작이 수원종로교회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유네스코 등록 세계 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하며 정조의 축성 원인인 효심과 위민 정신 그리고 축조 과정을 훌륭하게 평가하는데 정조대왕 사후에 수원화성이 아픈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수원에서 제일 오래되고 기독교와 천주교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북수동 성당과 수원종로교회도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아픈 역사의 하나다.

 

박세호 경기중앙신문 회장 [경영학 박사, 수원 화성 걷기 운동본부 회장]

 

박세호 경기중앙신문회장 [경영학 박사] webmaster@ggjap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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