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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이 정치활동이어야만 하는 이유

기사승인 2024.12.24  10: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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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중앙신문] [칼럼] 김연호의 세상보기

   
▲김연호 [노사민정 사무국장]

ㅁ노동운동의 순수성을 앞세워 정치활동에 거리를 두고 있어

ㅁ실제로는 정치권과 대립·협력 관계를 통해 밀접한 상호작용 이뤄지고 있어

ㅁ노동계는 공개적·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진보적 의제 공론화 주도 필요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을 대혼돈에 빠뜨린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며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을 선언했다. 먼저 민주노총은 4일 비상계엄 관련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전까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라고 밝혔다. 그 성명서에서 계엄은 독재 정권이 권력 연장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파괴했던 수단이라고 규정짓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국민과 민중들은 이번 계엄을 계기로 윤석열의 종말을 선언할 것”이라며 계엄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한국노총도 계엄 선포 직후 발표한 성명문을 통해 “한국노총은 윤석열 대통령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판단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고 선언하며, 각종 위원회와 기념식 불참을 정부 측에 통보했다. 양대 노총이 윤석열의 계엄 선포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필자는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을 보면서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정치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군부독재 시절 정권의 탄압 대상이었던 노동운동은 1987년 이후 세력화 측면에서 급성장을 이루며 현실 정치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현실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본연의 노동운동에 충실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 그룹에서는 노동활동가의 정치권 진입에도 부정적이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각종 위원회나 기념식 참석에도 소극적이거나 지극히 제한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정치 참여는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인식하에 조직 강화와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활동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노동조직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노동자의 독자 정치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그룹에서는 노동자당이나 진보 정당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현실 정치에서 그 성과는 미흡한 편이다. 안타깝지만 선거때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좌절되었거나 진보 정당의 분열상을 언론을 통해 접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노동운동과 정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노동운동이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이 가능한가? 이제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정계 입문 경로는 다양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노동운동가가 국회의원이나 시·도 의원 및 각종 위원회 위원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 노동단체가 입법과 예산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를 방문하는 일은 일상화되었다.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나 지지 여부를 떠나 노동자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양대 노총 대표자뿐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까지도 의원실과 정당을 찾는 경우는 많아졌다. 이전에 공무원의 강압적인 태도에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노동자의 억울한 사연을 국회의원을 통해 공식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보았고, 고위 공직자를 직접 불러 문제 해결을 압박하는 모습도 경험했다. 이러하니 노동계는 포괄적인 주제부터 시급하고 절박한 사안은 물론이고 사소한 민원까지 들고 국회의 문을 두드린다. 아마 각종 노동자 시위도 국회 앞에서 하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다. 중앙정치만이 아니다. 지방의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자 대표는 예산이나 민원 해결을 위해 자연스럽게 시도의원을 만나 노동계의 요구사안을 전달한다.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중시하는 노동계가 정치권과의 접촉면을 넓혀가며 소통 창구를 강화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노동단체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는데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현실에서는 노동계와 정치와의 거리는 너무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노동운동과 정치와의 관계 설정 관련해서는 노동계 내부에서 치열한 토론이 전개되고 있다. 선거 국면에서는 선거에 참여할 것인지,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 어떤 정책을 갖고 누구와 연대할 것인지, 독자 후보를 내고 정치 세력화를 시도할 것인지 등을 두고 노선 투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주요 정당으로부터 선거 연대를 매개로 후보를 추천받아 노동활동가를 정치권에 진입시킬 수도 있다. 여기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정치 혐오를 기반으로 노동운동의 순수성만을 강조하며 정치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과연 정치와의 거리 두기가 노동자에게 도움이 될까? 현실적으로 가능은 한가. 이미 현실에서 노동운동과 정치는 거리를 둘 수 있는 관계를 넘어섰다. 노동자의 삶과 노동운동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노동자의 적극적인 현실 정치 참여는 더 필요해졌다.

신자유주의라는 태풍이 전 세계를 덮칠 때에도 국가별 대응 상황은 차이가 났다. 전 세계 노동자와 시민의 삶은 똑같이 위협을 받았지만, 신자유주의의 파급력을 완화하고 제어하는데 국가의 정치 역량과 노동운동의 역할이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건강한 노동운동 조직과 성숙한 노동자 정치 참여 문화를 보유한 국가는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의제도 산적해 있다. 지금까지 인간다운 삶,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주도해왔던 노동운동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보적 의제의 공론화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 첫걸음은 노동계의 공개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운동이 노동자 연대를 뛰어넘어 시민과의 사회적 연대를 통해 더 좋은 민주주의, 더 나은 시민의 삶을 위한 지난한 여정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연호의 세상보기] webmaster@ggjapp.com

<저작권자 © 경기중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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